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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DB형은 퇴직할 때 받을 돈이 미리 정해진 제도이고, DC형은 회사가 넣는 돈만 정해지고 내가 운용한 결과에 따라 받는 돈이 달라지는 제도입니다. 그런데 퇴직연금 적립금 중 DB형 비중이 2024년 처음으로 절반 아래(49.7%)로 내려갔다는 수치를 보고 나서야, 저는 제가 어떤 제도에 가입돼 있는지 처음으로 찾아봤습니다.
DB형과 DC형, 구조부터 다르다
DB형(확정급여형, Defined Benefit)은 퇴직할 때 받을 금액이 미리 정해진 제도입니다. 퇴직 직전 3개월 평균임금에 근속연수를 곱한 금액을 받고, 적립금 운용의 책임은 회사에 있습니다.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제15조는 계속근로 1년에 30일분 이상의 평균임금이 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임금이 오르면 과거 근무기간 전체의 퇴직금도 함께 올라가는 구조라는 점이 핵심입니다.
DC형(확정기여형, Defined Contribution)은 반대로 회사가 납입하는 금액이 정해진 제도입니다. 회사가 매년 연간 임금총액의 12분의 1 이상을 근로자 개인 계좌에 넣고(같은 법 제20조), 이후 운용은 근로자가 직접 책임집니다. 퇴직할 때 받는 금액은 회사가 넣은 원금에 운용 손익을 더한 값이기 때문에, 입사 시점부터 얼마를 받을지 알 수 없습니다.
같은 조건으로 비교하면 차이가 선명해집니다. 월급 100만 원으로 시작해 매년 4%씩 오르며 3년을 일한 경우, DB형은 퇴직 직전 월평균 약 108만 원에 3년을 곱한 약 324만 원을 받습니다. DC형은 회사가 1년 차 100만 원, 2년 차 104만 원, 3년 차 약 108만 원을 순서대로 납입해 원금 합계가 약 312만 원이 됩니다. 여기서 운용 수익이 임금 상승률(4%)을 넘지 못하면 DC형이 오히려 불리합니다. 이 구조를 보고 나서 저는 DC형이 무조건 유리하다는 말이 왜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지 이해했습니다.
- DB형: 퇴직 직전 3개월 평균임금 × 근속연수, 운용 책임은 회사
- DC형: 연간 임금총액 ÷ 12 이상을 회사가 납입, 운용 책임은 근로자 본인
- 임금 상승률 > 운용 수익이면 DB형 유리, 반대면 DC형 유리
- DC형은 중도인출 가능(주택구입 등 법정 사유 한정), DB형은 불가
DC형으로 옮기는 사람이 늘어나는 진짜 이유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 투자와연금 리포트 69호에 따르면, DB형 비중은 2012년 73.9%에서 2024년 49.7%로 처음 절반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같은 기간 DC형은 17.6%에서 27.1%로, IRP(개인형 퇴직연금)는 8.5%에서 23.2%로 올랐습니다(출처: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 투자와연금 리포트 69호). IRP는 퇴직할 때 DB형이든 DC형이든 퇴직금을 옮겨 받는 개인 계좌입니다. 55세 이후 퇴직 등 예외를 제외하면, 퇴직금은 원칙적으로 IRP로 먼저 받아야 합니다(같은 법 제9조).
DC형 전환이 늘어난 배경에는 두 가지 구조적 변화가 있습니다. 하나는 임금 체계의 변화입니다. 호봉제가 줄고 연봉제와 임금피크제가 확산되면서 신입과 장기근속자의 임금 격차가 리포트 기준 2016년 2.3배에서 2024년 1.9배로 좁아졌습니다. DB형의 핵심 장점인 '마지막 월급 연동 효과'가 그만큼 약해진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DC형의 운용 환경 개선입니다. 위험자산 투자 한도가 70%까지 확대됐고, TDF(Target Date Fund, 목표시점펀드)처럼 은퇴 시점을 기준으로 자동으로 자산 배분을 조정하는 적격 상품은 100%까지 담을 수 있게 됐습니다. ETF 등 선택지도 넓어졌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흐름을 보면서 한 가지 신호를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주식 시장이 오를 때 DC형 전환 문의가 급증한다는 이야기가 실제로 나옵니다. 한 번 바꾸면 원칙적으로 DB형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결정을, 시장이 뜨거울 때 내리는 건 위험합니다. 저도 예전에 주식 투자를 해봤지만 시장이 오를 때는 조급해지고 내릴 때는 신경이 쓰였던 경험이 있어서, 이 부분은 특히 공감이 갔습니다.
전환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할 조건들
전환을 고민한다면 가장 먼저 볼 것은 회사가 두 제도를 모두 도입했는지입니다. DB형과 DC형을 모두 도입한 회사에서만 전환이 가능하고, 한 가지 제도만 운영하는 회사라면 선택 자체가 없습니다. 인사 담당 부서에 먼저 물어보는 것이 순서입니다.
전환 신청 시기도 회사마다 다릅니다. 분기, 반기, 1년 단위로 횟수를 제한하는 곳이 많기 때문에, 타이밍을 놓치면 상당 기간 기다려야 할 수 있습니다. 전환하면 회사와 계약된 퇴직연금 금융회사 중 한 곳에 본인 DC 계좌를 직접 개설해야 합니다.
임금피크제와 관련해서 한 가지 바로잡을 내용이 있습니다. DC형 전환이 회사의 법적 의무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제32조가 실제로 정한 내용은 다릅니다. 이 조항은 임금피크제 등으로 퇴직급여가 줄어들 수 있으면 회사가 그 사실을 미리 근로자에게 알리고, 근로자대표와 협의해 DC 전환이나 퇴직급여 산정기준 개선 같은 조치를 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무조건 DC형으로 바꿔야 한다'는 규정이 아닙니다. 회사 안내를 받으면 어떤 조치를 선택했는지 직접 확인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DC형으로 바꾼 뒤 운용을 하지 않고 원리금 보장 상품에 그대로 두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운용을 하지 않는 DC형은 임금이 조금이라도 오르는 DB형보다 불리할 수 있습니다. 저처럼 직접 운용에 자신이 없다면, 제도 전환이 오히려 손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먼저 따져봐야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DB형에서 DC형으로 바꾸면 다시 돌아올 수 있나요?
A. 원칙적으로 불가능합니다. DB형에서 DC형으로 전환하면 이후 연봉이 크게 오르더라도 과거 근무기간까지 소급 적용되는 DB형의 효과는 사라집니다. 전환 전에 향후 임금 상승 가능성을 충분히 따져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Q. 퇴직하면 퇴직금을 바로 현금으로 받을 수 있나요?
A. 55세 이전 퇴직이라면 DB형이든 DC형이든 퇴직금은 원칙적으로 IRP(개인형 퇴직연금) 계좌로 먼저 이전됩니다. IRP에서 연금으로 나눠 받으면 일시금 수령 대비 퇴직소득세를 30~40% 절감할 수 있어, 세금 측면에서도 IRP 활용 방식을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IRP와 연금저축의 세액공제·중도인출 차이는 연금저축 IRP 비교 (세액공제, 중도인출, 수령전략) 글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Q. DC형으로 바꾸면 무조건 ETF나 펀드에 투자해야 하나요?
A. 그렇지 않습니다. DC형 계좌 안에서 원리금 보장 상품(예금 등)을 선택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다만 운용을 하지 않고 원리금 보장 상품에만 두면, 임금이 조금이라도 오르는 DB형보다 수령액이 적어질 수 있습니다. DC형의 장점은 '잘 운용할 때'라는 조건이 붙는다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Q. 임금피크제가 적용되면 DC형으로 반드시 바꿔야 하나요?
A. 아닙니다.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제32조는 회사가 임금피크제 적용으로 퇴직급여가 줄어들 수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리고, 근로자대표와 협의해 DC 전환이나 퇴직급여 산정기준 개선 등의 조치를 하도록 정한 것입니다. 무조건 DC형으로 전환하라는 규정이 아니므로, 회사가 어떤 조치를 선택했는지 직접 확인하는 것이 맞습니다.
결론
결국 순서는 단순합니다. 우선 우리 회사가 두 제도를 모두 운영하는지 확인하고, 앞으로 임금이 얼마나 오를 가능성이 있는지와 제가 직접 운용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를 냉정하게 따져본 다음에 결정해야 합니다. 남들이 DC형으로 옮긴다는 분위기에 이끌려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여전히 먼저 듭니다.
월급에서 알아서 처리되는 거라 퇴직연금 제도를 한 번도 직접 확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민망하기도 했지만, 지금이라도 구조를 파악한 것이 의미 있었습니다. 제도를 이해하고 나면 적어도 잘못된 선택을 피할 수 있습니다. 인사 담당 부서에 제도 확인 하나 물어보는 것, 그게 시작입니다.
참고:
DB형? DC형? IRP? 퇴직연금 쉽게 비교하기ㅣ연금백세 Ep.3(v.25)
퇴직금 액수가 바뀐다! 요새 퇴직연금 DC로 갈아타는 사람이 늘어나는 이유
슬기로운 퇴직연금 #24 퇴직연금 제도, 차이만 알아도 퇴직금이 달라집니다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 투자와연금 리포트 69호 「퇴직연금 도입 20년, DB형에서 DC형으로의 머니 무브가 시작됐다」
국가법령정보센터,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